21c 21세기목회연구소 NEWS
 
1월 목회에 1년 목회의 승부를 걸어라-목회비전축제
관리자 2015-12-22 18:13:09 2385

신년예배와 목회비전축제

(1월 목회에 1년 목회의 승부를 걸어라)

 

 

1월에 해야 할 중요한 목회사역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신년감사예배와 목회선언이다.

둘째, 1월에 2-3주에 걸쳐 목회비전축제를 하는 것이다.

셋째, 사도행전 제직 세미나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의 직분관, 모델, 사역에 대한 공부시간이다. 그리고 직임자들을 훈련시키라. 성도들을 훈련시켜야한다.

넷째, 신년약속의 말씀 축복신방이다. 


지금의 성도들을 보면 교회신앙이 약하다.

개인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교회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누차 이야기 했다.

분명히 교회신앙과 개인 신앙은 분리해서 봐야한다. 개인 신앙이 좋다는 것은 본인의 만족, 개인의 성숙, 개인의 소원 성취 정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교회신앙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로 교회되게 만들어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데로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그럼에도 교인들이 교회신앙으로 세워지지 않는 것은 교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 와서 교회신앙으로 교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신앙으로 교회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사도행전을 보라. 1-28장까지의 전체를 봐도 개인 신앙을 강조한곳은 없다. 모두 가 교회신앙이다.

사도들 모두가 공통으로 한 말은 “교회”였다.

그들은 “예수”와 “교회”를 빼놓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제는 오로지 예수와 교회였다.

 

우리도 목회를 할 때 진지하게 해야 한다.

교인들에게 개인 신앙을 강조하기 보다는 교회신앙을 강조해야한다.

개인 신앙 10-20년씩 한다고 해도 교회신앙이 들어가지 않은 자들을 통해서는 교회는 세울 수 없다. 그런데 교인들은 교회 이야기 하면 싫어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한 말씀이다. 내가 교회이야기를 하면 너희들은 근심에 빠진다고 했다. 근심하고 불평한다. 교회 이야기 하면 성도들이 감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우리 목사님이 왜 자꾸 저런 이야기만 하느냐고 불평한다. 근심한다.

교회 세우자, 전도하자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선한 마음을 가지는 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1월부터 개인 신앙에서 교회신앙으로 철저히 가르쳐 줘야한다.

 

“교회가 나의 운명이 되게 하라.”

운명이라는 것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교회를 가까이 하면 살지만 교회를 멀리하면 죽음이라는 것을 알려주라.

교회가 그 사람들의 신앙, 사랑의 조건이 되어야 하는데, 그만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내가 교회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음으로 내가 있는 것이다. 교회가 있음으로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성도들의 개인 신앙과 교회신앙의 틀과 구조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목회계획이 분명하게 세워져야한다. 목회계획이 분명하다는 것은 방향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신년예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목회 방향을 전교인들이 분명히 이해하도록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회비전 축제를 통해서 모든 교인들이 1년 달려갈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알고 같은 방향과 목표를 향해서 한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향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을 보고 올바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를 알아야 한다. 교회를 바로 알면 올바른 방향을 향할 수 있게 된다. 올바른 방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8단계의 과정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교회 이해의 필수과정이다.

이 과정을 이해하면 목회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①목적 ➫ ②사명 ➫ ③비전 ➫ ④표어 ➫ ⑤기획 ➫ ⑥동기부여 ➫ ⑦적용 ➫ ⑧정착. 1-4번까지가 교회이고, 5-8번까지가 목회이다.

 

1. 목적이 구조를 만든다.

목적이 있어야 사명이 만들어지고 사명이 만들어져야 비전이 생기고, 그 비전에 의해서 상징성이 있는 표어, 캠페인, 타이틀이 만들어진다.

 

① 교회는 구조이기에 목적을 갖는다.

② 사명은 정확한 방향을 만들어 준다.

③ 비전은 실제성을 말한다.

④ 타이틀은 모든 것의 상징화(상징성)을 만든다.

⑤ 기획은 표면화 시키는 것이다.

⑥ 동기부여는 의식화이다.

⑦ 적용은 실용화이다.

⑧ 정착은 생활(삶)을 만든다.

 

2016년의 우리교회 목적은 ‘사도행전 위에 교회 세움이다.’

목적을 만들려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교회의 가치가 목적을 만든다.

교회의 목적은 예수, 말씀, 하나님, 성령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영원불변의 가치이다.

 

내년에 우리가 구조적 교회로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처치 플랜팅(교회 세움)이다.

이렇게 분명한 목적이 나왔다면 목적선언문이 만들어진다.

“2016년 우리는 교회를 세운다!!”이다.

‘교회 세움의 2016년’이 목적이다.

 

2. 사명은 목적의 구체화이다.

이것이 순서이다. 우리가 교회를 배워야 하는데 교회를 알려면, 교회의 목적 ➫ 사명 ➫ 비전을 배워야 한다.

교인들에게 목적, 사명, 비전이 무엇인지 알려줘라.

그런데 지금의 교인들은 교회의 목적도 사명도 비전도 모른다.

교인들에게 목적이 없으니까 교인들의 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교인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 아니다. 틀이 안 만들어진 것이다.

교회가 왜 그렇게 소중하며, 가치 있음을 알려줘야 하는데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고백이 나오지 않았다. 교인들이 교회 만들게 하려면 그들에게 교회의 틀을 만들어 줘야한다.

 

교인들이 교회에 대한 틀이 없으니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시험을 당한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라. 1년 동안 생산적이 목회를 한 교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제 우리교회는 비생산적인 목회를 하지 말고 생산적인 목회를 위해 변화, 거듭남, 충만의 과정을 심어줘야 한다. 그들에게 교회에 대한 틀과 구조를 만들어 줘야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도하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의도하는 교회를 세우려고 하면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교회는 결코 혜택을 받거나, 도움을 받기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로 인해 교회가 세워지는 것 자체가 나의 존재가치가 되어야 한다.

 

목사의 존재 목적도 마찬가지다.

마16:18절의 말씀처럼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존재이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세워질 뿐이다.

‘교회 세움’의 자리에는 만족과 성공의 개념이 없다.

항상 우리는 교회를 향해서 세워간다는 목적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교회가 ‘주님이 바라는 교회로 세워달라.’고 하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하기 보다는 ‘복’이라든지, ‘이룸’에 대한 기도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틀로 우리 기도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목회를 진지하게 해야 한다.

목사가 교회 사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교회 세움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교인들이 교회를 쉽게 안 본다.

 

그런데 목사가 자꾸 교회가 어렵다고 하면, 교인들도 교회에 대한 가치를 가볍게 본다. 교회에 대한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힘들어도 교회를 붙들고 가야한다.

지금은 돈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다. 사명을 잃어버려서 힘든 것이다.

사명을 잃어버리고 하는 목회는 모든 부분에 혼란이 온다.

“교회 세움의 2016년”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것을 목적으로 했을 때 사명은 목적의 방향을 잡아준다. 그러면 교회 세움의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의 질문이 온다.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은 “사도행전의 그 교회”이다.

 

우리교회는 사도행전적 교회, 사도행전적 말씀, 사도행전적 믿음, 사도행전적 기능, 사도행적적 사역, 사도행전적 사도의 모습에 사명을 갖는다. 사도행전 1장에서 28장까지 보여줬던 그 전체를 사명으로 가져야한다.

 

구원이나 은혜의 개념을 잘못이해하면 안 된다. 구원이나 은혜는 가치성에 있어서 매우 큰 것이다. 구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죄 씻음의 문제가 아니다.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구원은 천국까지를 포함하는 것이기에 매우 크다.

 

은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은혜를 단순한 선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은혜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과 상급까지를 포함한다. 교인들이 은혜로 산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통치 안에서 산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런 큰 개념으로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작은 범위 안에서 은혜를 이야기한다. 즉 좀 더 나은 것으로 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사는 것이 은혜라고 이야기 안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의 범위는 엄청나게 큰 것이다. 하나님은 천대까지 은혜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의 의미는 천대까지 “주권, 통치, 심판”까지 다 포함해서 하신 말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라는 단어도 포괄적인 단어이다.

이 말씀에도 통치와 주권이 포함된 말씀이다. 예를 들어보자. 고린도 전서 3:10절 이하에 보면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지혜로운 건축자로서~ 세우나~세울까를 조심하라.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했다.

고전3:10-11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절 이하에서도 “누구든지 세운 공적대로 상을 받고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전은 거룩한즉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다.

고전3:12-17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교회는 이처럼 구원에서 심판까지를 다 담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교회생활을 잘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는 구원에서 심판까지, 즉 처음부터 끝까지가 다 있기 때문에 교회 와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라는 이름 자체를 조심하라고 한다.

 

이미 강의했지만 야고보서의 시험과 실수에 대해 경각심을 가졌다.

지금 교인들이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성도들이 계속 실수를 한다. 말의 실수를 하고 신앙적 실수를 한다.

구원과 은혜, 그리고 교회라는 이름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크다.

교인들이 작게 보는 교회를 어떻게 크게 만들어줄 것인가가 우리의 고민이다.

 

사도행전교회는 결코 작지 않았다. 크다. 큰 교회다. 말씀, 기도, 성령이 다 교회 안에 있었다. 그런 미션(사명)이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에 사명의 방향성이 올바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가는 방향성이 분명한가?

방향만 분명하면 목적지에 가는 것 어렵지 않다.

방향이 분명치 않으니까 목적지에 못가는 것이다.

 

교회는 결코 토의 문화가 아니다. 강단을 바라보게 되어있다.

강단의 메시지를 보는 것이다. 교인들이 앞을 바라본다는 것은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단에서 정확한 메시지가 전해지지 않으면 방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전달해 주는 메시지가 교인들의 방향을 만들어 준다.

 

전화의 법칙이 있다. 즉 전화를 받는데 중요한 메시지를 쓰려고 하는데 종이가 없다. 다음에 또 전화가 걸려 와서 중요한 메시지를 기록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종이는 있는데 펜이 없다. 그래서 종이도 펜도 잘 준비해 놓고 다음에 오는 전화를 받았는데 기록할 만한 메시지가 없다.

 

방향을 설정해 준다는 것은 곧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명은 메시지이다.

교회는 매 주일마다 앞(강단)을 바라보게 되어있다.

이것은 교인들이 종이와 펜을 준비해 놓고 기록할 만한 메시지를 달라는 말이다.

사명의 메시지를 달라는 말이다.

우리교회는 교회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하느냐 하면 사도행전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3. 비전은 사명의 구체화이다.

사도행전적 사명이란 어떤 교회를 말하는 것인가? 사도행전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우리는 실제적인 교회, 살아있는 교회를 세우기를 원한다.

움직이는 교회, 활동하는 교회,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를 세우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사도행전 교회를 세우는데 사도행전 2:42-47까지의 살아있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비전이다.

살아있고 움직이는 교회를 세우는데 그 모델을 사도행전 2:42-47절의 교회라는 것이다.

 

비전은 결코 환상이나 꿈이 아니다. 비전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여기까지 공부하면 성도들도 사명선언문, 비전 선언문을 만들 수 있다. 종이를 나눠주고 사명선언문과 비전선언문을 써보게 하라. 기록된 것이 개념이다. 그리고 그 개념이 결국 그의 삶을 만든다. 교인이 적어보게 하라.

 

일반적으로 인지 ➫ 사고 ➫ 진술을 만든다고 했다.

인지가 사고를 만들고 사고가 진술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인지하면 그것이 사고를 만드는데 이 사고는 다른 말로 말하면 체계이다. 교회에 대한 사고력이 있다는 것은 교회에 대한 체계가 잡혔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생각하라.’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온다. 이 말의 의미는 ‘사고의 체계를 정립해 만들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체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혼돈의 공간에 오셔서 체계를 만드셨다.

즉 창세기 1:2절 이하에 보면 혼돈된 세상에 오셔서 하늘의 것과 공중의 것과 땅의 것이라는 체계를 분명히 하셨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우리고 교회에 오면 하늘의 것이 무엇인지, 공중의 것이 무엇인지, 땅의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성도들이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가장 먼저 입을 열어 가라사대 하시면서 하셨던 일이 하늘의 것과, 공중의 것과 땅의 것을 구별해 주셨다. 이것이 바로 마5:3-12절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말씀이다. 이 산상수훈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분명히 구분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분명하게 알려줬다.

하늘의 것을 먼저 구하라고 요구하셨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을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성도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 혼돈 속에 산다.

 

우리교회의 비전에 대해 써보라고 교인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시켜보라. 그러면 그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신앙적 수준을 알 수 있다. 비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목적과 사명을 안다는 것이다.

 

주보 1면의 비전 선언문을 보면 그 교회가 가치와 목적, 사명을 가지고 쓴 것인지 믿음으로 쓴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비전이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오늘하루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밥을 먹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 내가 희생하고 포기하는 것에 대한 결정이 비전이다. 목적은 사명이다. 사명은 나를 만드는 실체이다.

 

비전은 사실이고 나이다.

목사가 비전을 세울 때 이 교회가 나이고, 내가 교회라는 사고의 체계가 만들어져야한다.

 

그런데 진술은 삶이다. 그렇게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에 진술한다는 것은 내가 사는 삶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삶은 무엇인가?

기도로 말하고, 침묵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침묵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돕고 사랑하는 모습이다.

기도로 말하고 침묵으로 봉사하는 진술이 없다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진술 없는 삶은 공중에 떠다니는 삶이다.

 

성경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세상의 실제를 말한다. 세상에 대한 말, 기도, 침묵의 봉사가 있어야 한다. 침묵의 봉사는 돈, 시간, 몸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은 나를 세상의 진술자로 보냈다. 인지와 사고가 없으면 진술이 안 된다.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교인들이 세상에 나와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입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입을 통해 부르짖는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의 이유이다. 이것을 통해 비전을 이루고 비전의 삶을 산다. 그러기에 비전이 나를 만들고, 내가 비전을 만든다.

 

4. 비전이 상징화 되어 표어가 된다.

우리교회는 사도행전 29장으로 세워가는 교회이다. 예수, 복음, 교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상징적 교회로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상징은 하나님이 상징성이다. 상징이란 정확한 메시지이다. 이 상징(메시지)이 사람을 집중시키며,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러기에 교인들이 교회에 오면 눈이 휘둥그레지면 안 된다. 항상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교회의 타이틀을 만들 때 상징성을 띠고 있는가? 아니면 허상인가?

 

지금 우리교회가 내년에 하려는 것은 교회세우는 것이다.

그동안 했던 성장에서 세움의 과정으로 바꾸었다.

여기서 세움이라는 단어에 담긴 3가지에 대해 그전에 강의했었다.

세움이란? 새것이라는 개념과 세움이라는 개념과 미래라는 개념이 있다고 했다. 내년에 우리가 하려는 목회는 숫자를 많게 하거나, 돈을 많이 거두는 목회가 아니라 세움의 목회이다. 개념이 세움으로 간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더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를 세워가면서 가정도 함께 세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을 세운다는 것을 남편, 아내, 자녀의 의무 감당을 잘한다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세운다는 것은 기도와 언어로 세워야 함을 이야기한다.

 

예수님도 그렇고 사도들도 끝없이 세워갔다. 에베소서를 보면 교회를 세울 때 가정도 같이 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의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와 가정을 같은 개념에서 말한다. 교회 세움과 가정 세움은 같다는 것이다. 교회와 가정은 같이 가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데 가정을 희생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가정은 희생의 대상이 아니라 세움의 대상이며 조건이다. 진짜 교인들이 잘 모른다. 교회 세움과 가정 세움을 같이 가게 하라. 하나님이 나라 세움과 교회 세움, 그리고 가정 세움의 궁극적 목적은 같다.

하나님이 나라, 교회, 가정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교회, 가정 세움은 같다.

 

남편과 아내, 자녀들이 자기의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편으로서 가정을 세우고 있느냐는 것이다. 자녀도 가정을 세워가야 한다.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교인들도 교회 와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소로 교회를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가정이나 교회에서 보면 아쉽게도 세움의 개념이 없다. 모두다가 이익만 있다. 누구 몫이냐는 것이다. 누구에게 이익이 더 돌아가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교회이다. 여기에는 결코 세움의 과정이 없다.

 

이제는 내가 빼먹을 차례가 왔다가 아니라 내가 내 놓을 차례가 왔다고 해야 한다.

교회 와서 돌려 드리려고 해야 한다. 내가 돌려드려야 할 순번이 왔다고 좋아해야 한다. 교회는 세움의 개념으로 가야한다. 세움이 우리의 타이틀이 되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교회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5번 째 부터는 목회에 대한 것이다.

 

5. 기획은 표면화 시키는 것이다.

기획이 목회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이런 일을 한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즉 목회계획을 기획하는 것이다. 1월부터 이렇게 목회할 것이니 성도들은 여기에 고정된 시선으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말하지 말고 교회가 준비한 대로 맞춰서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가 살고, 하나님의 나라도 살고, 우리도 산다. 그러면 교인들이 목회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정확하게 목회를 표면화 시켜서 보여주라.

 

우리들의 착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설교하면 교인들이 다 알아서 척척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르칠 때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이나, 교회, 예수님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오직했으면 성경에서 교회를 “비밀”이라고 했겠는가? 비밀을 누구에게 알려주겠나? 비밀은 알려고 미쳐있는 자에게만 알려준다. 교인들이 교회 와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교회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나?

 

교인들이 교회 와서는 교회를 알려고 해야 한다. 교회를 알고 싶어해야한다. 그러면 그 비밀이 공개된다. 표면화해서 성도들을 집중시켜라. 분명한 계획을 표면화 하는 것이 목회이다.

 

6. 동기부여는 의식화 하는 것이다.

의식화는 내면화를 말한다. 내면화는 동기부여를 계속 준다. 1-2월에는 동기부여를 계속 해줘야한다. 작정 밤 기도회에 참석하라. 사랑하라, 희생하라, 헌신하라고 계속해야한다. 그리고 10월 첫 주에는 두 배 부흥이 있다고 계속 강조하면서 동기부여를 내면화 시켜야한다. 마음과 머릿속에 이런 말을 계속 넣어주어야 한다. 신앙 속에, 성도들의 언어 속에 입력을 시켜줘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귀속에, 머릿속에 집어넣어 주어야한다. 비어 있는 가치 속에 계속 집어넣어 주어야 한다. 설교를 통해서 귓속, 가슴속, 머릿속에 집어 넣어주어야 한다.

성도들을 빈 가슴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그 비워진 가슴속에 계속동기부여를 해서 내면화 시키라. 계속 채워주어야 한다.

 

성도들이 채워져 있으면 그대로 하고, 그대로 산다. 그러나 머릿속이나 가슴속이 비어있으면 엉뚱한 것들이 들어간다.

 

어느 신대원에서 강사가 와서 강의하기를 “지금 교회가 안되는 때이니 다른 것 하라.”고 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무엇을 찾아야 할지 난리가 났단다. 학생들만 난리 난 것이 아니라 학교가 난리가 났단다. 그러면 신학생들이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교수가 잘못한 것인가? 교수의 잘못이다. 이런 것처럼 오늘날도 목사의 잘못이다. 교인이 문제가 아니고, 신학생이문제가 아닌 것처럼 우리의 잘못이다.

 

철저히 인지해야한다. 우리의 잘못이지 교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엎드려서 우리가 먼저 그분 앞에 서야한다. 우리를 먼저 부르심은 우리를 먼저 엎드리게 함이다. 그런데 아쉽게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엉뚱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채워야 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채우긴 채웠는데 엉뚱한 것으로 채워져 있고, 우리와 함께 있는 교인들의 마음은 비어져 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 목회현실이다.

 

지금도 진짜 목회를 하면 교회는 된다.

엡5:25절에 나와 있는 교회의 구조로 하면 교회는 되도록 되어있다.

엡5:25절은 몸을 바치는 구조를 말한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주님이 교회를 위해 몸을 주셨다. 주님은 ‘정치’나 ‘성공’을 위해 몸을 바친 분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몸을 드렸다. 그러기에 우리도 몸 바쳐서 교회 사랑하면 된다.

교인들도 진짜 목회하면 남은 인생을 바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였고, 이것이 바로 진짜 교회였다.

 

지금도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금 성도들이 구경꾼으로 교회에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재대로 말하면 몸 바치겠다는 기대로 교회에 나오는 자들이다.

주님만 몸을 바쳤고, 초대교회의 교인들만 바친 것도 아니고, 사도들이나 스데반만 몸 바친 것 아니다. 지금도 동기부여만 분명히 주면 몸 바치려고 준비한 자들이 많다.

 

2001년부터 2015년 사이에 교회 부흥시킨 목사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희생‘이었다.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엔 부흥이 있다. 교회를 위해 희생, 몸 바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부흥이 있었다. 공부 많이 해서 부흥하는 것 아니다. 설교를 잘해서 부흥했던 것이 아니다. 교회를 위해서 희생한 목사가 있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했다.

 

지금 교회가 안 되는 교회를 보면 반대로 공부를 많이 했거나, 경험이 많다거나, 안다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더 어려워져간다. 희생하는 목사는 고생하는 것 같은데 채워지는 것이 따로 있다. 그런데 큰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벽보고 사는 자’들이 많다.

 

말이 먹히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왜 말이 먹히지 않는지 아는가? 본인속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아무리 던져도 본인은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살아나는 자들이 있다.

21세기 목회에 있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은 교회를 위해 몸 바치는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희생하는 목사가 있으면 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근심 중에 고린도 전서와 후서를 쓴 것이 아니라 사랑이 넘쳐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랑이 넘쳤다. 교회에 대한 넘치는(흘러넘치는) 사랑 때문에 말을 했다. 결코 분노를 품으면서 말하지 않았다. 설교에 모든 분노를 담아내 놓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의 시선으로 말을 하라. 그리하면 그것 때문에 교회가 뒤집힌다. 동기부여는 메시지가 있다. 의식화 내면화를 이루는 것이다.

 

7. 의식화가 이뤄지면 적용점이 만들어지고 그 적용점이 실용화를 이룬다.

동기부여와 내면화가 이뤄지면 사람이 적용점을 찾는다.

기도 안 하던 성도가 기도하기 시작한다.

헌금 안하던 성도가 헌금하게 된다.

예배에 냉냉 하던 자가 예배에 적극적이게 된다.

전도에 관심 없던 자가 전도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목회의 적용점이 만들어 내는 내용이다.

진짜 교회에서 제대로 된 선포를 듣는다면 밤에 성도들이 교회에 달려온다.

예배에 열성을 보이고 예배를 회복한다.

기도가 냉냉 했는데 눈물의 기도를 하게 된다. 이것이 적용점이 만들어진 교회의 모습이다.

말씀의 적용이 실용화를 이룬다.

매년 같은 것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변화가 일어난다. 적용점이 중요하다.

 

8. 교회의 생활화가 이뤄진다.

교회가 실용화를 통해 안정된 정책이 이뤄지면 생활화가 된다.

교회가 생활화 된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생활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교회가 삶과 생활과 상관없는 나의 별도의 또 다른 기관이다. 교회가 내 생활이 아니라 기관이기에 어색하다.

 

예수님의 표현 가운데 ‘습관적인 기도’가 있었다. 이것은 규칙적인 삶과 생활을 말씀하는 것이다. 교회생활도 삶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생활이 아니라 일이나, 직업이나, 노동이나, 기관이 되면 교회의 모든 것이 다 어색하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릴수록 좋다. 2-3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 교회생활이 이뤄진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늦게 믿으면 생활화가 어렵다.

목사들도 극단적인 변화를 통해 목사가 되었다면 교회가 생활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가 내 운명공동체’로 살아온 자들은 진짜 교회가 운명이 된다.

그러나 어쩌다 돌아온 자들은 교회가 운명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교회를 위해 몸 바치지 못한다.

어느 시점에 가면 자기의 사고나 자기의 감정이나 생각이 되살아난다.

하나님의 축복을 한 번에 잊어버린다.

목회 축제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교회가 나의 삶, 생활, 운명이 되게 하라.

 

그러면 교회에 오는 것을 아버지 집에 오는 것만큼이나 좋게 느껴진다.

교회가 사랑받는 곳임을 알려주라.

거기서 살았으며, 중요한 것들을 거기서 결정했기 때문에 교회와 떨어질 수 없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와 만났다.

지난 주간에 칠순이어서 잔치에 참여를 했는데 작은 아들이 이단에 빠져서 아버지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 그 아들은 교회가 나의 운명이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볼 수 없었다.

강단 위에서의 당당함에 반해 강단 뒤에서의 쓰라린 가슴을 어떻게 그 아들이 알 수 있을까?

웃기는 웃어도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있을 것이다.

인사말에서도 가슴 아픈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더라.

 

어떤 목사의 말이다.

자식이 잘못되는 것, 나에게 힘들게 하는 것은 진짜 목회를 하는 목회의 선물이다. 자식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목회에 대한 더 큰 열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더 크게 교회를 붙들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식이 잘못되는 것은 목사의 희생양이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목사가 있다.

10-20명밖에 없는 성도와 함께 있는 목사의 아들이 고시에 합격을 했다. 믿음 좋은 아들로 굳게 가정을 지켜나갔다. 그것은 또 뭔가?

하나님은 이렇게 공평하시다.

 

교회가 생활이고, 삶인 목회를 하라.

목회가 삶을 만들어라. 그 삶이 교회를 세운다.

목회축제는 교회와 목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 교회를 세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교회, 가정,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든 세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신앙유산서약주간을 갖는 것도 가정을 세우기 위함이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를 세우는 과정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다.

 

2015년에 우리 온 성도들이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은 “세우는 신앙”이다.

망가졌고,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해이다.

하나님의 교회, 가정,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는 일에 복음의 선재성을 보여주라.

 

복음의 선재성이란? 먼저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셨다.

이것이 선재성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왔다.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우리도 선재적 목회를 해야 한다.

반응을 기다리고 반응에 따라서 행동하지 말라.

우리가 먼저 실천하자. 행함으로 반응을 일으키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반응을 보고나서 행동한다. 그러나 주님은 반응을 먼저보지 않고 행동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성이다. 주님의 위대성이다.

그분이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무엇인들 주시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우리가 조금만 헤아려 드리면 다 주시는 분이시다.

 

결론이다.

우리가 4가지의 교회와 4가지의 목회를 이야기 했다.

목회계획을 위한 모든 것이 이 8가지 안에 모두 있다. 이것을 가지고 신년선언예배를 드리고 목회비전 축제를 하면 된다. 목회자의 모든 역량을 여기에 집중해서 우리가 하려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먼저 목회자 자신이 선명한 그림을 그리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한다. 이런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1월 목회의 핵심이다.

 

  참고자료  아래 참고자료를 클릭하시면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1. 목회계획과 신년선언예배 설교 샘플 (다운 받기SNS)

 

2. 목회비전축제자료:알파목회축제 I알파목회축제 II   / Acts29 노란색 바인더 6P

 

3. 제직훈련자료:사도행전제직훈련, 탁월한집사, 목회공유소명, 광야학교Part II

       
 
 
 
  소개
  구성
  약도
  회원/강좌안내
  이지컴하드고
  아름다운사람
  이번호보기
  독자참여
  구독신청
  후원안내
  TANKBANK
  신간/베스트
  목회자료
  훈련자료
  절기자료
  설교자료
  전도TOOL
  성경/찬송
  CD/DVD
  고객센터
  성지답사
  스케쥴
  답사후기
  성지답사다시보기
  성지칼럼
   
   
   
   
  배너
  배너제작방법
  배너보기/주문
  시안확인
  주문/배송조회
  자료실
   
   
   
  설교서비스
  이용안내
  설교자료실
  목회자료실
  동영상강의
   
   
   
   
  성공칼럼
  성공설교
  성공예화
  성공BOOK 소개